이별 후에..
2007.05.20 00:43

이런 사랑

조회 수 915 추천 수 26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런 사랑-소설가 신경숙

아주 오래 전에 지방으로 출장을 갔던 큰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약혼을 하게 되었으니 나보고 정읍으로 내려오라는 당부였다.
머리가 띵했다. 약혼을 한다구? 애인도 없던 사람이 누구하고? 출장을 가서는 약혼이라니? 어리둥절했지만 여동생이 오빠가 약혼을 한다는데 안 가볼 수는 없는 일이라 셋째오빠와 외사촌과 함께 정읍으로 내려갔다.
오빠의 느닷없는 약혼 소식에 어리둥절해 있기는 서로 마찬가지였다. 집에 내려가서 들은 이야기는 큰오빠가 출장지에서 집에 들렀다가 선을 보았는데 그 선본 여자하고 하루 만에 약혼을 하게 되었다는 거였다. 뒤로 자빠질 뻔했다. 어제 선본 여자하고 내일 약혼을 한다니. 세상에 그런 일도 다 있나?
설령 마음에 들었다고 해도 서로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때 오빠 나이는 스물여덟인가 아홉이었다. 노총각도 아니어서 결혼하는 일이 그리 급한 것도 아니었는데, 게다가 까다롭기로 치면 또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 어떻게 한 번 선본 여자하고 약혼을 한단 말인가?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오빠도 오빠지만 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한 번 선본 남자와 약혼할 생각을 했을까 싶어서. 다음날 약혼식장으로 가기 전에 나는 그 여자를 찻집에서 잠깐 만날 수 있었다.
여자는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큰 눈망울, 흰 피부, 얼굴 중심을 조화롭게 하고 있는 코, 단정한 입술,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라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옅은 화장은 은은한 분위기를 냈고,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일 정도로 길었다.
그 전에는 오빠의 마음을 영 모르겠더니 여자를 만난 후에는 저런 여자라면 나라도 반하겠다 싶은 것이 오빠 마음을 짚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여자의 눈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눈이었다.
오빠가 한때 애인이라고 여겼던 여자, 오빠 밑으로 줄줄이 딸린 우리들 때문에 오빠를 버리고 간 여자의 눈빛과 많이 닮아 있었다. 단지 오빠가 애인이라 여기고 있었던 여자의 눈이 세련되고 도시적인 쪽에 맞춰져 있다면, 그 날 오빠와 약혼을 앞두고 찻집에서 마주친 여자의 눈은 조용하고 수줍고 온화한 기색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가 아름다워서 나는 점점 미묘한 기분이 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여태 있다가 만난 지 하루 된 사람과 약혼을 한다?
두 사람의 약혼식은 소박하게 치러졌다. 케이크에 촛불이 켜지고 축배를 들고 서로 인사말을 하는 동안 뒷자리에 서서 멀거니 그 둘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만 훌쩍이고 말았다.
집을 떠나 도시에서 그동안 밉네 곱네, 하면서 오빠와 함께했던 정이 웬 만큼은 되었던지 여자한테 오빠를 빼앗긴 것 같은 심정이 든 게 사실이었다. 한데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에게 빼앗겼으니 다시는 오빠를 되찾을 길이 없을 것 같고, 좌우지간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오빠의 약혼식장에 서게 된 마음이란 이렇게도 저렇게도 설명이 안 되었다. 약혼식이 끝나고 둘은 한 달 후에 결혼을 하였다.
나는 곧 대학생이 되었고 책 읽느라고 그녀에게 오빠를 빼앗긴 마음을 곧 잊어버렸다. 둘은 연애 기간이 없었던 만큼 연애하듯이 결혼 생활을 해나갔다. 나는 그 둘의 틈에 끼여 신혼 시절도 함께했고, 그 둘 사이에 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보았으며, 그 아이가 네 살 무렵에야 겨우 분가를 했다.
그렇게 함께 보낸 수많은 날들 중의 어느 날, 내가 그 둘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그리 한 번 만나고 약혼할 생각을 하였느냐고.
오빠의 대답 : 그 여자와 만나 첫날 몇 시간을 같이 있어보고 난 뒤에 참 좋은 여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밤에 여자를 바래다주러 갔다가 들어간 그 집의 분위기가 참 좋았어. 가족들이 소박하고 다정했고, 방바닥은 따뜻했으며, 마당에 심어진 꽃들이나 가축들도 사람의 정성스런 손길을 많이 탄 흔적이 여기저기에 스며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여자가 끓여 내온 따뜻한 차를 마시는 동안 오래 오래 만나온 여자 같았어.
몇 시간밖에 같이 안 있었지만 여자에게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도 그 집과 닮아 있어서 이대로 서울로 가버리면 어쩐지 영영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 그래서 퇴짜 맞을 생각으로 대뜸 약혼을 하자는 청을 넣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진 거야.
언니의 대답 : 선보는 날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오빠는 바바리를 입고 있었는데 차를 마시다 문득 보니까 바바리 소매 끝이 다 닳아 있었어요. 단추도 하나 떨어져 있었고요. 헌데 그게 싫은 게 아니라 측은한 마음이 일었고, 오히려 막 꾸미고 나오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었어요. 선보러 나오면서 소매 끝이 다 닳은 바바리를 입고 나온 사람이 없는 말을 지어낼 것 같지도 않았고, 그래서 하는 말 그대로 믿었어요.
헤어질 때 단추를 달아주고 싶었는데 자존심 상하면 어쩌나 싶어서 그냥 보낸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다음날 다시 만나자는 게 아니라 약혼을 하자는 연락이 왔죠. 처음엔 황당했지만 아버지가 약혼은 너무 빠르지 않냐라는 말에 반작용으로 더… 그 단추 때문에.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 분이 양쪽 모두에게 신뢰를 받는 분이어서 두 집안 어른들 마음속에는 그분이 소개해주는 사람이라면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무엇보다 컸었다.
나는 언니의 대답을 듣는 순간 그녀에게 생긴 믿음과 우호적인 감정이 여태껏 지속되고 있다.

사랑은 곧 정서이며 인격이다.
무엇 때문에 그를 사랑하게 되었나,는 그래서 중요하다.
사랑이 어긋나게 되었을 때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그 사람에 대한 마음도 곧 인격이다. 보이지 않는 배려는 다른 것이 아니라 나하고는 어긋났지만 어디선가 잘살고 있기를 축원하는 마음이 곧 배려이다.
혹 나로 인해 상처받지 않았기를, 혹 나로 인해 나쁜 일이 안 생기기를.-




다들 잘 지내셨냐고.. 안부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역시 저의 안부를 전해야 할 것 같고..
아직도.. 아침에 머리를 감을 때나, 자려고 누웠을 때나,
해가 막 지려는 시간들에..
그가 떠올라.. 한참을 생각하고는 그런답니다.

점점 줄어들고는 있지만,,, 가끔..
제가 울 때 이렇게 눈물이 많아서 어떡하냐는 그의 말이나,
아플 때 멀리서 달려와줬던 그,
혹은 날보며, 웃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너무나도 잘 떠올라서 힘들곤 하답니다.
정말 거짓말처럼, 싸우고 화내던 모습은 잘 생각이 안나요..

이제는 정말 실감이 나고, 이제는 정말 받아들일 수 있겠고.
이제는 안부를 물을 수도,, 그에게 이제야.. 축하 비슷한 말을 건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시간의 힘이란.

신경숙님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마음이 외롭고.. 한없이 슬퍼지려고만 할 때. 그녀의 글들을 읽으며 힘을 얻곤 해요.
요즘, 그녀의 글들을, 이제는 거의 외울 지경인 그 글들을 또 읽었습니다.
그러다 오늘은 문득, 신간은 언제쯤 나오려나.. 어떻게 지내고 있나..
그녀의 관한 이야기들을 검색하다, 제가 읽지 못한 에세이를 발견하곤
많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한때는 정말, 하루 종일을, 정말 그가 잘못되기를 바란 적도 있었어요.
힘든 마음에,, 어디 한군데 마음 둘 데를 찾지 못해,
마음속에 가득.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들로.
정말 내가 괜찮은 날들이 오긴 하는 걸까..
참, 많이 힘들었었는데..

정말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제는 조금씩 고마운 생각도 들고, 이해할 수도 있겠고 그러네요.
전 정말 제가 이럴 줄은 몰랐어요.
너무 너무 화가 나고 그가 미웠는데 말이지요.

그래도 육년 넘게. 그를 많이 의지했고, 그로 인해 웃었던 날들이 더 많았고,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기도 했고.. 참 많이 행복했었던 것 같아요.

사랑이 어긋나게 되었을 때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그 사람에 대한 마음도 곧 인격이라는,
그녀의 말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혹 나로 인해 상처받지 않았기를, 혹 나로 인해 나쁜 일이 안 생기기를.


다들 건강하시길..
몸도 마음도.

  • ?
    우물 2007.05.20 10:03
    봄바람님, 오랜만이시네요. ^^
    많이 나아지신것 같아 보이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
    그녀와 헤어져 한참 힘들때엔 봄바람님의 사연에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고 울컥울컥하곤 했었는데...
    이젠 저도 많이 좋아져 봄바람님의 이번 글에 공감하며,
    마음이 가라앉고, 슬며시 미소짓게 되네요.
    신경숙님은 정말 글을 잘 쓰시는것 같아요.
    어쩜 이렇게 사람 마음을 살살 잘 어루만지시는지...
    솔직히 그 분 글 읽어본게 거의 없습니다.
    얼마전 인터넷을 떠돌다가 발견한
    '인연은 한 번 밖에 오지 않는다'
    란 글을 이곳에 댓글로 달았던 적이 있었죠.
    그 때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고,
    마음을 가라 앉게 해줬었는데...
    지금 봄바람님께서 적어주신 글귀들도
    저를 다시 한 번 돌아 보게 하네요. ^^
    저번에도 생각한 거지만,
    그 분의 글들 한 번 읽어봐야 겠네요.
    좋은 글 감사드리고요.
    항상 건강하고, 행복만 가득하시길...
    그리고 다음엔 더 좋은 소식으로 만나뵙길 바래요.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www.이별.com [공지] 실연을 극복하는 법 136 ssijes 2001.09.07 35236
8110 이별 후에.. 그 사람이 준 상처만 잊어버리며... 사랑을말하다 2007.06.30 780
8109 www.이별.com 한남자 두여자.. 악연 1 wise 2007.06.27 890
8108 www.이별.com 그립다.. 1 은영 2007.06.26 833
8107 이별 후에.. 힘들 자격 없지만 .. 힘들다.. 너무 아프네.. 2 no1ball 2007.06.19 1251
8106 이별 후에.. 6년을 만나고 헤어진지 5달이 힘겹게 지나갔네요 2 스타일 2007.06.18 1137
8105 이별 후에.. 가슴이 찢어질듯 아파옵니다 3 첫사랑 2007.06.11 1216
8104 이별 후에.. 한여자의 한남자에 대한 복수.. 도와주세요. 1 복수 2007.06.10 981
8103 이별의 두려움, 위기.. 아직도 기다립니다 1 희망 2007.06.04 1232
8102 이별의 두려움, 위기.. 불면증 걸렸어요..그사람이 날 버렸다는걸 알게되고 난후.. 2 조혜령 2007.06.04 1079
8101 www.이별.com 아퍼서...잠이 안와........... 4 진아 2007.05.31 1062
8100 이별 후에.. 떠난 사람을 다시 잡으려면.... 3 포기하지않아. 2007.05.31 1606
8099 www.이별.com 심난하네요 유리의성* 2007.05.29 791
8098 이별 후에.. 보고싶어여..너무보고싶어서 미치겟어여..너무좋은데.. 2 김재은 2007.05.29 1229
8097 이별 후에.. 마지막... 그래도사랑합니다 2007.05.27 825
8096 www.이별.com 너무 보구싶고 힘듭니다. 4 포기하지않아. 2007.05.27 995
8095 이별 후에.. 도와주새요.. 밤톨이 2007.05.27 634
8094 이별 후에.. 가라 1 aaa 2007.05.22 801
8093 이별 후에.. 제가 다시 그녀를 만날수 잇을까요..? 4 평생그녀만사랑할건데 2007.05.21 1119
» 이별 후에.. 이런 사랑 1 봄바람 2007.05.20 915
8091 우리가 헤어진이유.. 죽겠어여 ㅠㅠ 1 김보관 2007.05.19 109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10 Next
/ 410